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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 품질 / 2016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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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 스펙 ]

인서울 / 3.7 / 토스 lv.6 / 없음


[ 합격 자소서 ]

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여의도 고층빌딩이 주었던 교훈] 오직 젊음으로만 가득 차있던 무전여행 도중 캄캄한 국도 위에서 부상과 마주할 때가 기억납니다. 무전여행을 결심한 때는 상경 첫 날, 여의도에 있는 고층 빌딩을 볼 때였습니다. 목포에서 태어나 학교 활동 이외는 다른 지역을 가본 적도 없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빌딩 앞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세상과 싸워보겠다던 제 자신이 초라해보였습니다. 저는 이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친구와 떠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스쿠터만을 챙기며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춥고 배고프던 무전여행의 첫날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은 교회에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다음날 중국집에서 설거지를 도와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루고 말겠다는 오기로 무전여행에 임하던 도중 국도 한가운데에서 부상을 당해 여행을 진행하기 어려웠습니다. 한 밤 중 오직 스쿠터 한 대 만을 이끌고 왔기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꿎은 휴대폰만 30분 동안 흔들며 지나가는 자동차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저희 앞에 멈춰 섰습니다. 천사 같던 아저씨께서는 저희의 사정을 들으시고는 본인의 가정집에서 재워주시고 숙식까지 제공해주셨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입장으로 작은 배려가 크나큰 감사함으로 느껴지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저였지만, 따뜻한 마음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부딪힐 수 있는 자신감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짧은 여행은 도전의 가치를 알려준 큰 계기였습니다. 이렇게 6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층빌딩’과 같은 것들을 많이 만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고층빌딩’ 앞에서 저는 더 이상 초라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딪히고 경험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많은 두려움 앞에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단 하루를 위한 한 학기의 희생]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보디빌딩 대회를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조각처럼 다져진 근육을 뽐내는 선수들을 보며 ‘멋진 몸을 가져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내가 선을 긋는 순간 나의 한계가 결정된다.’는 심권호 선수의 말을 본받아 ‘역도부’라는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몸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동아리였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끈끈한 우정의 동아리였습니다. 약 50년 역사를 통한 선후배간의 화합의 장이 형성 되어 있었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부원들이 있었습니다. 한 학기의 활동기간이 지나고 기획부 임원진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진정으로 아끼는 동아리였기에 망설임 없이 받아드렸습니다. 제가 맡은 주요행사는 매년 개최되는 ‘Mr.Yonsei’라는 바디빌딩 대회였습니다. 故 앙드레 김 선생님께서 매년 우승자에게 정장을 맞춰 주셨을 만큼 유명인들의 후원을 받는 권위 있고 역사가 깊은 대회이기에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프로젝트와 전공 공부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습니다. 6개의 전공과목을 소화해야했고, 시합 날짜는 시험 기간과 겹쳤습니다. 임원진들이 기존에 모이던 정규 회의로는 부족하기에 거의 매일을 모여 기획하였습니다. 고된 일정으로 몸에 무리가 가는 날도 많았지만 기획부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회당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후원을 받고 환호를 받은 대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승자는 아니었지만 뒤풀이 날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 대회를 위해 포기한 것도 많았지만 어느 하나 아깝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이었기에 몇 배의 기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조직을 위해 희생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3.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실패 속에서 배운 깨달음] 제 손으로 제트 엔진에 사용되는 블레이드를 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 시간, 교수님께서는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니 철회를 할 학생은 지금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트 엔진의 블레이드는 국내에서도 기술적 한계로 인해 생산이 불가능한 제품이기에 학부생의 전공 지식으로는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한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평소 성적이 잘 나오지 않던 학문이었기에 가장 어려운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요구한 사항은 블레이드의 정해진 압축비율과 질량유량으로 비교적 간단해 보였습니다. CAE 프로그램 중 하나인 ANSYS와 관련 전공 지식을 한 달여간 교육을 받은 후에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운 만큼 하면 손쉽게 나올 줄 알았는데 하나의 변수를 바꾸면 다른 변수가 요동쳤습니다. 포기한 팀들도 하나 둘씩 늘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이 배우고 알아가야 하는 학문이기에 포기란 없었습니다. 오히려 95% 이상의 효율을 내보자는 그 이상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교수님을 찾아뵈었고 도서관에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관련 서적을 공부했습니다. 처음 보는 기호와 수식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블레이드 제작 발표 날, 주어진 조건에 더하여 90% 효율의 블레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교수님께서는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블레이드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제가 목표한 효율도, 교수님의 만족도 얻지는 못 하였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도정정신’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지식에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저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실패를 통해 좌절하기보다 그 과정을 통해 더 성장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출처: 대학생 대외활동 공모전 채용 사이트 링커리어 https://linkare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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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포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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